[단편 소설] 네 번째 너
너를 죽이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다.
첫 번째 너는 칼로 찔러 죽였다.
두 번째 너는 불에 태워 죽였다.
세 번째 너는 자살하게 했다.
너를 죽이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다.
하지만 네 번째 너를 죽이는 게 가장 힘들다. 단단한 얼굴 생김새와 다르게 부드러운 갈색 눈, 천국 같은 미소.
*
“당신의 임무는 그를 죽이는 것입니다.”
“네?”
나는 의아했다. 그리고 당장 비밀정보부를 박차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모두 합해 다섯 명의 그가 존재합니다. 복제가 살아있는 한 오리지널도 오래 살지 못합니다.”
“오리지널을 빼고 나머지 남자들을 다 죽이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당신의 임무는 가짜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왜 저한테 그런 일을?”
“그분의 연인이니까요.”
“한 때였죠.”
사우스와 노스. 전쟁고아인 우리는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성별도 운명도 다 필요 없었다. 그냥 간편하게 부를 이름이 필요했을 뿐. 여자지만 어렸을 때부터 남자아이들과 싸움을 좋아하고 잘했던 이유로 살인병기로 키워진 나와 달리 공부를 잘했던 너는 열다섯 살이 되자 엘리트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자 너는 세계정부의 청년 지도자 그룹에 들어갔다. 스물다섯 살이 되자 하원의원이 되었고 다음해에는 최연소 수상 후보가 되었다. 특별한 해였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해였다. 그리고 너에게 ‘그 사건’이 발생한 것도 바로 그 해였다.
그해는 내게 있어서 불운의 해였다. 내게 욕을 하는 상관을 바닥에 매다 꽂아서 군대에서 불명예제대를 당했다. 불명예제대 때문에 용병 지원에서도 계속 떨어지는 바람에 생계가 곤란해졌다. 매일 공사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지내다가 네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는줄 알았다. 방송에서는 네가 분해되었다고도 했고, 전송되었다고 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너의 행방에 대해 이런 저런 이론을 폈다. 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평행우주가 발견된 이래, 정치인들은 두 파로 나뉘었다. 평행지구들과 지구와의 단절을 위해 과학기술을 쓰자는 파와 평행지구들로 이동해서 외교를 시작하자는 파.
세계 최초의 순간이동 장치를 네가 이용했고 오류가 났다고 했다. 음모론에 따르면 아직 완전하지 못한 순간이동기술로 너를 죽이기 위한 정치적인 꼼수라고도 했다.
“저도 순간이동장치를 이용하게 된다고요?”
“노스처럼 순간이동 시에 여러 명으로 복제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류는 고쳤으니까요.”
요원은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용병으로만 살아왔던 내게는 용어들이 너무나 어려웠다.
“그럼 제가 죽여야 하는 이들은 복제인간인 겁니까?”
“네.”
“그럼 복제들에게 오리지널의 기억이 없겠군요?”
내 말에 요원은 잠시 망설였다.
“그들은 자신이 복제인간인지 모릅니다.”
요원이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들은 자신이 오리지널인줄 압니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기억도 있고, 몸도 같다면 그가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증거가 어디 있어요? 모두 오리지널이잖아요.”
“아니요.”
그가 고개를 세 개 저었다.
“뭐가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들은 복제가 아니에요.”
“가보시면 압니다.”
요원은 단호했다.
“그를 아시지 않습니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노스와 잘 알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복제들은 그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의 성격의 일부분만 가지고 있습니다. 오리지널만이 그의 성격 전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일 못 하겠습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
“한때의 연인라고 하셨죠?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봅니다.”
요원은 내게 인형을 하나 건넸다. 헤지고 더러운 곰인형이었다. 곰인형의 목걸이에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S. 나를 구해줘.’ 라고 씌어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게 무슨 뜻인지. 노스는 항상 그런 식으로 막무가내였다. 일을 저질러놓고서는 내게 구원을 요청했다. 너는 약하지 않았지만 내 앞에서 일부러 약한 척을 했다. 덫이었다. 너는 항상 주장했다. 내가 있어야 네가 완벽해진다고. 그건 네 생각이고. 내 생각에 내 인생은 완벽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버겁다.
“가보죠. 가서 보고 결정해도 되나요?”
나는 물었다. 요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스와 사우스로 불렸던 우리는 태어나서 열 살까지 함께였다. 전쟁 지역에서 동시에 발견된 우리는 이란성 남녀 쌍둥이로 오인되었다. 신체검사 결과 친남매가 아니었다는 게 밝혀진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같이 있었다. 네가 싸움에 지고 있으면 내가 가서 죽지 않을 만큼만 때려주었고 너는 그런 나를 좋아했다. 셈도 잘 못했고, 받아쓰기도 못해서 선생들이 투명인간 취급했던 나. 얼굴에는 늘 검댕이가 묻어있고 멍이 들어있었던 나를 말이다.
그 후에 네가 나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에 대해서 나는 네 탓을 하지 않았다. 네가 뛰어난 성적을 자랑하기 시작한 이후, 사람들은 네게 좋은 옷을 주었고 좋은 친구들을 소개시켜주었다.
너는 학교 대표가 되더니, 곧 청년대표가 되었다. 회합에서 너는 큰 소리로 발언을 했고 모두 네 말에 박수를 쳤다. 네가, 학교가, 선생님들이 그랬듯, 온 세상도 곧 너의 것이 될 것 같았다.
첫 번째 너를 발견한 것은 제 2지구에서였다. 발견된지 제일 오래된 평행지구였다. 지구로서는 몇 백 년 전 시대에 해당하는 그 쪽의 과학기술이 형편없어서 그쪽에서는 제1지구인 우리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제 2지구에 떨어진지 이년 된 너는 적응해서 잘 살고 있었다. 사실 너무 잘 살고 있었다. 1지구의 발달된 지식으로 부를 쌓고, 타고난 정치력으로 당파를 이끌었다.
예를 들어 가난한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는데 그 방법은 외국인을 학살하고 이웃나라를 침공하는 일이었다. 지난 이년 간 침공당한 이웃나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수확한 전리품들은 나라의 재산이 되었다. 사람이든 보물이든 문화재든.
덕분에 너의 인기는 너무나 좋았다. 너무 좋아서 네가 무슨 짓을 하던 사람들은 그대로 뒀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너를 좋아할 수 없었다. 탐욕과 광기와 오만에 사로잡힌 진짜 너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첫 번째 너를 죽인 날에도 일을 하느라 바빴다. 여자들을 가둬놓고서는 순혈 국민을 계속 낳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했고 전쟁에 진 이웃나라 여성포로들을 전사들의 성노예로 삼는 명령을 내렸다. 저녁식사 후에는 아이들에게 전쟁을 칭송하는 시를 낭송하게 했다. 내가 바닥에 매다 꽂은 그 독재자같은 상관을 떠올렸다. 그가 무한권력을 얻으면 첫 번째 너처럼 행동할 것 같았다.
철통 보안인 네 저택에 들어가는 일보다 첫 번째 너를 찌르는 일이 어려웠다. 칼날이 너의 내부에 박혀서 부르르 떠는 동안 너는 나를 바라보았다. ‘왜?’그런 눈빛이었다.
너와 같은 눈과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네가 아니었다. 절대 너일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넘고나서 그러니까 오리지널 네가 유명해지고 나서는 네가 나를 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리지널 네가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너는 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곧 연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추억이었다. 떠난 것은 나였다.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너는 나를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용병에 불과한 선머슴같은 고아에 불과했지만 너는 나의 의견을 존중했다. 군복 비슷한 옷을 입고 너와 데이트했던 나에게 치마를 입어보라고도 결혼하자고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미 한번 했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잘 알았다.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첫 번째 네가 절대 너일 수 없다는 것을. 진짜 너라면 독재자가 되지 않았을 거였다.
첫 번째 너를 죽이고 나서 나는 전혀 죄책감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너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너를 닮은 누군가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첫 번째 너는 절대 네가 될 수 없었다. 너의 마음속의 편협한 그림자일 뿐이었다.
두 번째 너는 좀 달랐다. 너는 죽어 마땅했다.
처음에는 네가 여자들을 스토킹하다가 법적 제재를 받았고 나중에는 그녀들을 살해하기 시작한 것을 알았다. 나중에는 살인을 위한 살인을 시작했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성매매 여성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녀들이 애원할 때까지 고문하고 결국은 죽였다. 그들이 애원하는 것을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찾아낸 경찰 보고서에는 네가 어떻게 그들을 죽였는지 소상하게 나왔다. 몸을 거꾸로 달아놓고 피를 몇 십 리터를 뺀 뒤 조각조각내서 불로 태웠다. 여자만이 아니었다. 노인이나 어린이등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었다.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물어봤더니 전 애인이 자신을 버렸고, 아버지가 자신을 학대하고 버렸고, 사회가 불공평해서 자신이 살기 힘들어서라고 했다. 오리지널 너의 기억과 정확히 같았다. 하지만 오리지널 너는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일을 선택을 했다.
경찰이 잡기 전에 내가 잡기로 결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두 번째 너는 그런 짓을 하면 안됐다. 최소한 너의 모습을 한 누군가는 그러면 안됐다.
어느 새벽, 클럽 앞 골목길에서 처음 보는 여자의 목을 조르고 있는 두 번째 너를 발견한 나는 너를 향해 달렸다. 너의 목숨을 끊어놓기 위해서였다. 너는 달려오는 나를 보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너는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눈을 마주친 두 번째 너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우스!”
네가 소리쳤다. 불쾌했다. 두 번째의 입술로 내 이름이 불리는 것도 그의 머릿속에 내가 있다는 것도 불쾌했다. 나는 천천히 두 번째 앞으로 걸어갔다.
“이러지마. 내가 누군지 몰라?
“알지. 네가 한 일들을 다 알아.”
“네가 생각이 나서였어. 네가 날 버린 거. 기억 안나?”
잠시 나는 망설였다. 그 몇 초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두 번째는 펜으로 나의 목을 찔렀다. 나는 피를 흘리며 쓰러지다가 너의 발목을 잡았다.
유명해진 네가 부담스러워서 내가 떠나고 나자 너는 약간의 스토킹을 했다. 집 앞에서 차안에 숨어 몇 시간동안 기다린다든가 친구를 통해 연락을 했다. 두 달을 계속된 이 스토킹은 내 생활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았고 너에 대한 내 호감을 무너뜨리지도 않았다. 너는 내 입장을 배려했고 최대한 너의 욕망을 참았다. 그리고 둘의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 너는 스토킹을 하고 싶어했던 너의 그림자를 몇 십 배 확대한 자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떠난 너를 스토킹하고 해하고 싶어했던 나의 그림자이기도 했다.
“거지같은 년들. 너희들은 다 죽어야 돼.”
두 번째는 내 손을 밟았다. 내 손목에 장착한 레이저화살이 그와 발목을 관통한 것은 그때였다. 레이저화살은 그의 발목을 뚫고 종아리와 온몸을 관통했다. 그리고 내부에서부터 불이 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안심이 되는 일이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해 나는 멀리 숨어서 죽음을 끝까지 지켜봐야했다. 후미진 골목이라 아무도 오지 않았다. 두 번째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잠이 안 오는 습관이 든 것은 세 번째가 죽고 나서였다. 세 번째는 평행지구 중 조금 특이한 곳에서 살았다.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로 보아서는 근미래의 지구였다. 로맨틱한 만남이 배제된 곳이었다. 아이들은 배양되었고, 남녀 상관없이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생각을 했다. 따로 또 같이, 모두 혼자였다.
세 번째 너는 나와 헤어졌을 당시의 너를 떠오르게 했다. 네가 떠나고 나서 너는 일에 몰두했다. 승승장구하는 너의 모습을 미디어에서 보면서 나는 기쁘면서도 섭섭했다. 나 따위는 잊은 듯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그 반대든가. 한창인 나이에 여자 친구나 아내가 없는 너의 모습을 보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자연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너는 정치인이었지만 마치 학자 같았다. 혼자 멀리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 하지만 현실과의 연을 끊은 사람.
“내가 복제인거지? 내가 죽어야지 네가 행복한 거지?”
과학기술이 더 발달된 곳이라서 세 번째 너는 내가 왜 왔는지 그 이유를 추측해냈다.
“답을 꼭 해야 하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게 아니었을지 몰랐지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너는 병약했다. 몸도 마음도. 부모에게 버림받고, 연인에게 버림받고, 세상에서도 버림받은 태도로 세상과 유리되어 살았다. 네가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는다면 세상은 영원히 너에게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너의 인생에 대한 답은 내가 주는 게 아니었다. 자살하기 위해서 꼭 나의 답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 거였다. 하지만 다음 질문에는 답을 해야했다.
“나랑 같이 죽을래? 현실은 너무 피곤해. 영원한 쉼을 가지고 싶어.”
세 번째 너는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
“아니.”
나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대답했다.
“그래.”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 번째 너는 이미 여러 번의 자살시도를 실패했었다.
이번에 너는 성공했다. 다량의 약을 먹고 잠이 든 너를 바라보며 나는 잠들기가 어려워졌다. 너의 삶의 태도는 너의 선택이었다. 내가 관여할 수도 없었고, 하기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면죄부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이때부터 나는 약물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너의 동반자살 제안에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오리지널 너와 같은 모습을 한 세 번째 너와 한날한시에 영원한 쉼터로 가는 것은 정말 유혹적인 제안이었다. 이런 약한 생각은 전쟁을 업으로 삼으며 살인병기로 키워진 나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리지널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나는 죽을 수 없었다.
대신 나는 좀 쉬고 싶었다. 어차피 오리지널 너와 현실에서 함께 할 수 없는 내게 세상은 재미없었다. 내면이 흔들리기 시작한 나는 마침내 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네 번째 평행지구에서 복제품이 아닌 민간인을 살해해버린 거였다.
*
네 번째 너를 처음 본 것은 어느 가정집 앞에서였다. 자상해보이는 아내와 차문을 열고 내리는 너를 보았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민간인 아내 앞에서 너를 죽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평행지구에서 증거를 남기면 안 되었다.
오토바이가 나를 밀치고 지나갔고 나는 넘어졌다. 네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낯선 이에게 묻듯 네가 물었다. 네 번째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오.”
나는 대답했다. 아내도 달려왔다. 너희 둘은 부산을 떨며 나의 몸을 살폈다.
네 번째 너의 걱정어린 얼굴 뒤로 ‘세놓음’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세놓으신다고요?”
“네, 이곳이 좀 도심과 멀리 떨어져있긴 하지만 조용한 곳이죠.”
“쉬기 좋은 곳이네요.”
충동적이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난 정말 쉬고 싶었다. 세 번째 임무를 마치면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무엇보다 너를 죽이는 임무를 잠시 멈추고 싶었다.
타겟이 윗 층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안심되지만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나의 의도를 네가 눈치채기라도 하면 일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달 동안 두문불출 방안에서 물리치료와 운동으로 몸 관리를 하며 보냈다. 너를 죽이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가끔 내가 잘 있나하고 너의 부인이 찾아와 살폈다. 조심스레 그러나 따스하게. 좋은 사람 같았다.
디데이는 일주일 후였다. 너희는 나를 집 파티에 초대했다. 나는 거절했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손님들이 찾아오고 몇 분 후 네 아내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내가 뛰어나가자 네가 보였다.
오리지널 너였다.
나는 오리지널의 손을 잡고 골목길로 숨었다. 너는 손에 든 레이저 건을 들고 벌벌 떨고 있었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치료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네가 망설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내가 나섰어.”
너는 아직도 떨고 있었다. 평생 총을 들어본 적이 없는 너였다,
“네가 설마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온 거야?”
“아니면 내가 죽어.”
너는 비통하게 말했다.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줘.”
나는 한숨을 쉬었다.
“네가 그 놈이랑 같이 산다는 소식을 듣고 온 거기도 해. 너 설마……”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나는 말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 너의 복제일 뿐이잖아. 네 번째는 좋은 사람이야.”
나는 오리지널을 보며 설득해보려고 했다.
“바로 그게 문제야. 내가 바꿔치기 당할 수도 있다고.”
너는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정말 그럴까? 네 번째는 기억을 잃었어. 아주 편리하지.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기에는.”
“예를 들어 누구의 꼭두각시?”
내가 묻는 동안 갑자기 골목길 저편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보디가드 본능으로 너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군가가 쏜 레이저가 나의 팔을 스쳤다. 우리와 같은 곳에서 온 사람이 분명했다. 나는 곧바로 작은 표창을 던졌고 상대의 목을 관통했다.
오리지널을 노리고 죽이려고 한 것은 네 번째의 아내였다.
감옥에 갇힌 나에게 형사가 찾아왔다. 네 번째 너였다.
“실명부터 시작하죠. 내 아내의 진짜 이름이 뭐에요?”
네가 물었다. 당연히 그녀의 신분은 모두 가짜였다. 평행지구에서 건너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임무나 배경에 대해 알지 못했다. 오리지널 너를 죽이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 빼고는.
“몰라요.”
“그럼 당신부터 시작하죠. 당신의 진짜 이름이 뭐에요?”
“사우스 림이라고 했잖아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어요.”
“이 세상에는 없겠죠.”
“저 세상에서라도 왔다는 말인가요?”
“그래요.”
“당신이 일부러 감옥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요. 도망갈 수 있었는데 일부러 잡혔죠. 변호인도 선임하지 않고. 평생 감옥에서 썩을 셈인가요? 속셈이 뭐죠?”
네 번째 네가 물었다.
“속셈이요? 모르겠어요.”
진심이었다. 나는 내 속셈을 알 수 없었다. 어째서 네 번째 너를 아직도 안 죽이는지. 언제 너를 죽이게 될지. 아니면 죽일 생각이나 있는지. 쉬고 싶다고 생각해서 임무를 미룬지 벌써 한 달이었다.
“이거 먹고 말해요.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죠?”
네 번째 네가 내 수갑을 풀고 앞에 사온 국밥을 놓았다.
“아내를 죽인 나한테 왜 잘 해줘요?”
내가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나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는 너에게 나는 타인일 뿐이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려고요.”
“저도 질문이 있어요.”
“말해봐요. 당신들은 대체 정체가 뭐죠?”
“당신이 기억을 못 할 뿐이죠. 당신은 어떻게 형사가 되었죠?”
내가 물었다.
“나는 부분적으로만 기억해요. 이년 전에 기억상실증에 잠깐 걸렸죠. 아내가 그런 나를 살펴주고 결혼까지 했죠.”
네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네 번째의 아내라던 그 여자가 네 번째의 신분세탁부터 모든 것에 관여했던 거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당신도 나를 만난 적이 있나요?”
네가 물었다. 나는 너를 만난 적 없었지만 또, 있기도 했다. 너의 복제들.
첫 번째 너는 칼로 찔러 죽였다.
두 번째 너는 불에 태워 죽였다.
세 번째 너는 자살하게 했다.
너들은 나를 보며 죽어갔다. ‘왜?’ 라는 표정으로.
너들을 죽이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다. 죽이고 나서는 항상 눈만 감으면 네가 죽어가는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낮이나 밤이나, 언제나. 그래서 나는 운동을 실컷한 뒤 눈감을 새 없이 쓰러져 자곤 했다.
낮에는 눈을 항상 뜨고 무언가를 보려고 한다. 지금은 눈을 감고 싶다. 내 눈 앞에 네 번째 네가 있다. 부드러운 갈색 눈, 같이 있는 사람을 천국에 있는 것같이 느끼게 하는 바름. 한달 동안 옆에서 네 번째 너를 탐색했다. 네 번째 너는 아내와 개와 이웃들과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사회의 불운한 사람들을 돕고 악한 사람을 내치는 성자같은 사람이었다.
‘배달음식만 시켜먹으면 위장 버려요.’ 한번은 네 번째 네가 아내와 함께 음식을 놓아두고 갔다.
내가 문을 열고 나와 그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자 네 번째 네가 지나가다가 간섭을 했다.
“음식이나 사람이야 입맛에 안 맞으면 버리면 되지만 세를 준 사람과는 연락 끊으면 안돼요. 월세를 잊으면 안 되니까요.”
네 번째 너는 미소지으며 농담을 했다.
“파티에 오세요. 좋은 영혼들이 많아요.”
영혼이라는 말에 왜 마음이 당겼는지 모르겠다. 그냥 천국같은 미소와 어울리는 단어였다.
부드러운 갈색 눈, 같이 있는 사람을 천국에 있는 것같이 느끼게 하는 바름. 온당함. 절제. 배려. 매너.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이상적인 네 번째의 너.
네 번째 너의 그런 바름이나 따스함을 세상에서 없애고 싶지 않았다. 그게 오리지널 너를 위한 일이라도.
평행지구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어렵다. 증거가 있어서는 안됐다. 그러므로 네 번째 너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내게서 무기를 없애는 거였다. 가장 안전한 곳은 감옥이었다. 감시카메라가 곳곳에 있고 감시원들이 있는 곳. 내게 안전한 곳이 아니라 네 번째 네게 안전한 곳.
“몸이나 조심해요.”
아무런 소득없이 떠나는 네 번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제가 올 때마다 항상 그렇게 말하는데, 협박인가요?”
네 번째 네가 물었다.
“현실적인 조언이죠.”
나는 대답했다. 언제든 오리지널 너의 측근이 와서 너를 살해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너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되면 오리지널의 건강은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 개의 복제가 사라진 지금 오리지널의 생존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였다. 오리지널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가지려고 운동을 하고 건강식을 먹는 것을 아는 나는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감방 안으로 들어와서 잠깐 누웠다. 내가 아는 오리지널이라면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굳이 하지는 않을 거였다. 내가 아는 심성이 착한 너라면 말이다.
문이 열리고 네 번째 네가 들어왔을 때 나는 예감했다. 뭔가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감방 안에는 감시카메라가 없었다.
“감방 안에서만 긴밀히 할 말이 있다면서요.”
네 번째 네가 감방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바로 뒤로 간수가 따라 들어왔다. 나는 간수의 얼굴을 재빨리 확인했다. 오리지널 너였다. 너는 나를 향해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나도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네 번째를 죽이지 말라고.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너는 그가 살아있어도 생존할 수 있잖아!’
하지만 나는 네 번째를 향한 너의 살해 의도를 눈치챘다. 그리고 순식간에 너와 네 번째 너 사이를 가로막았다. 네 번째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를 살릴 경황이 없었다.
오리지널 너는 주머니 속에서 내가 쓰던 레이저 건을 꺼냈다. 그리고 네 번째 너를 향해 쏘았다. 나는 중간에서 그걸 대신 맞았다. 몸을 관통하는 레이저의 불길을 느끼며 나는 순식간에 너를 제압했다. 그 순간이었다. 네 번째가 레이저 건을 들고 서 있었다.
“제발 그를 죽이지 마요.”
나는 외쳤지만 네 번째는 오리지널 너에게 이미 여러 번의 총상을 입혔다.
“안 돼.”
나는 오리지널 너를 안았다.
“너를 데리러 왔는데 성공하지 못했어. 미안해.”
간수 복장을 한 오리지널 네가 죽어가며 말했다.
“몸도 약하면서 왜?”
나는 가슴이 무너져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네가 나대신 강해져야하는 게 더 이상은 싫었어. 안타까웠어.”
너의 말이 점점 흐려졌다.
“나도 이렇게 되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야.”
네 번째가 조용히 말했다.
“오리지널은 그렇다고 해도 네가 죽게 되리라는 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안됐다는 듯이 네 번째 네가 한숨을 쉬었다. 평소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네 번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그를 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혹시 우리를 기억하는 거야?”
나는 물었다.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없어서 이만.”
대답대신 네 번째가 천천히 레이저 건을 나를 향했다. 그리고 쏘았다. 세 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상적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며.
나는 꿈 속 같은 그 순간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실감할 수가 없었다. 주위가 슬로우 모션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네 번째 너는 오리지널이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앉아서 오리지널 너의 심장에 손을 댔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나서 무릎에 묻은 먼지를 깨끗이 털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네 번째 너는 기억을 잃은 게 아니었다.
오리지널 너의 그림자 중에 가장 악독한.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부류.
고통에 눈을 감았다. 죽어가면서 떠오른 것은 네 번째의 얼굴이었다. 부드러운 갈색 눈, 같이 있는 사람을 천국에 있는 것같이 느끼게 하는 바름. 온당함. 절제. 배려. 매너.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이상적인 너.
‘당신의 임무는 가짜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요원의 말이 떠올랐다.
나의 임무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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